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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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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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다른 사람”이 살아갈 자리는 어디인가!

자폐의 역사는 곧 이 세상에서 “어딘지 다른 사람”이 살아갈 자리를 추구해온 역사다. 그 궤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어딘지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편견에 맞서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어딘지 다른 사람이 배울 수 있는가?”라는 편견에 맞서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어딘지 다른 사람은 열등한 존재가 아닌가?”라는 편견에 맞서 신경다양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그것이다. 이 책은 자폐를 둘러싼 세 가지 노력을 통해 다수와 다른 소수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살아갈 자리를 만들고, “다름”이란 것이 “열등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적 특성임을 깨닫기까지의 과정에 동참한 자폐인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딘지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 감금과 비난의 역사
1940년대에 레오 카너가 처음 “발견”한 뒤로 자폐증은 사회악으로 취급되었다. 당시 대두되던 우생학적 사회개조의 분위기 속에서 모든 장애인은 귀중한 국가 자원을 잡아먹는 “열등시민”에 불과했다. 심지어 2차대전 중 독일에서는 이들은 조직적으로 살해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자폐인은 가족을 떠나 기관에 수용된 채 평생 방치와 학대 속에 살았다. 당연히 의문이 제기되었다. 자폐의 원인은 무엇일까? 1950년대에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영향 속에서 엄마 탓이라는 비난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언론에서 “냉장고 엄마”라는 선정적인 용어를 퍼뜨린 탓에 엄마를 탓하는 문화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1960년대 들어 영국에서는 부모들과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미국에서는 버나드 림랜드가 자폐증이 심리학적 원인이 아니라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을 탐구하며 “냉장고 엄마”라는 고정관념을 강력하게 반박한다. 한편, 수용기관의 비인간적인 실태가 언론을 통해 폭로되기 시작한다. 1970년대 들어 “쌍둥이 연구” 등을 통해 엄마를 비난하는 문화는 서서히 붕괴하고, 수용기관은 점차 폐쇄의 길을 걷는다. 수용기관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1990년대이지만, 부모와 가족을 비난하는 문화는 아직도 강고하게 남아있다.
“어딘지 다른 사람이 배울 수 있는가?” - 교육법 개발과 교육권 쟁취의 역사
본격적으로 자폐인을 교육하려는 시도는 1960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그보다 조금 늦게 부모들이 공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했고, 학계에서는 응용행동분석을 이용해 자폐 어린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했다. 1960년대 말, 이바 로바스와 에릭 쇼플러라는 걸출한 학자들이 자폐 어린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자, 1970년대 들어 발달장애 어린이의 공교육 접근권 소송이 이어지는 한편, 장애 어린이의 교육을 공공이 책임지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이제 교육 지원을 위해 더 많은 어린이에게 자폐증이라는 진단명을 부여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로나 윙과 주디스 굴드는 자폐증을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으로 이런 사회적 필요를 뒷받침했다. 1980년대 들어 자폐증은 최초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에 정신질환으로 등재되었으며, 1990년 장애인교육법이 통과되면서 최초로 사회적 혜택을 받는 장애로 분류되었다. 1994년 아스퍼거 장애가 DSM에 추가되면서 자폐증 스펙트럼 장애라는 개념이 공식화되었다. 이제 많은 발달장애 어린이가 사회의 지원 속에서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자폐증의 유병률 자체는 변함이 없었으나 자폐로 진단받는 어린이는 크게 늘어났다. 대중이 오해하기 쉬운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자폐증의 대중화 - 과학과 비과학의 충돌
1980년대 말 〈레인 맨〉이 개봉되면서 자폐증은 대중문화 현상으로 발돋움했다. 더 많은 사람이 자폐와 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때마침 활성화된 인터넷을 통해 불순한 의도를 지닌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도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되었다. 근거 없는 치료를 통해 한몫 잡아보려는 사람들이 활개치기 시작한 것이다. 더 기막힌 일은 1998년에 영국의 의사 앤드류 웨이크필드가 자폐증이 MMR 백신에 의해 생긴다는 거짓 연구 결과를 보고한 것이었다. 더 많은 어린이에게 교육 혜택을 주기 위해 자폐진단기준을 완화한 탓에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어린이가 계속 늘고 있었다. 대중은 자폐증 자체가 엄청나게 늘어 유행병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제기된 음모론에 의해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수많은 자폐 부모가 백신제조사와 국가를 상태로 소송을 제기했고, 백신 접종률은 급락했다. 한편 1990년대부터 부모들의 주도로 자폐증에 대한 생의학적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들이 속속 생겨나 과학 연구가 촉진되었다. 또한 양심적인 언론인과 의료계의 노력으로 음모가 밝혀지면서 웨이크필드는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률은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으면서 사라졌다고 생각되던 감염병들이 다시 유행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비과학적 음모론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딘지 다른 사람은 열등한 존재가 아닌가?” - 신경다양성 운동
1986년 템플 그랜딘이 자폐인 스스로 자폐 경험을 기술한 최초의 책 《어느 자폐인 이야기》를 출간했다. 통념상 말을 못한다고 생각되었던 자폐인이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랜딘은 교수이자 축산 시설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이기도 했다. 이 사실은 일부 자폐인이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는 점을 크게 부각시켰다. 로나 윙이 제안한 “스펙트럼”이란 개념이 정설로 자리잡으면서 자폐인/비자폐인이라는 이분법보다는 인간의 정신이 무수한 측면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측면이 모두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싹텄다. 1993년 자폐인인 짐 싱클레어가 “우리를 위해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연설을 통해 자폐인의 자기권리옹호운동을 탄생시켰다. 1996년에는 역시 자폐인인 호주의 사회학자 주디 싱어가 신경다양성이란 용어를 창안하고, 학위논문에 신경다양성 운동에 대해 기술했다. 결국 인간은 정신적 다양성을 지닌 존재이며, 자폐란 특정한 측면이 덜 발달한 대신 다른 측면이 발달하는 현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자폐의 역사는 곧 인간해방의 역사다!
자폐는 무엇인가? 지금도 수수께끼다. 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회가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고, 효율과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던 때 자폐인은 쓸모 없는 존재,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정상인’에게 부담만 되는 존재로 치부되었다. 그때 자폐는 질병이자 저주였다. 그러나 인류는 이성과 공감의 힘으로 꾸준히 장애물을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자폐인을 가두었던 비인간적인 시설을 해체하고, ‘냉장고 엄마’라는 끈질긴 편견을 극복했다. 자폐인과 소통하는 법을 찾았으며, 공립교육 시스템에서 모두가 함께 배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백신과 유사과학의 폐해가 엄청났지만 역시 과학의 힘으로 진실을 밝혀냈다. 또한 자폐인을 어느 누구와 다름없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사회에서 그들이 살아갈 자리를 마련하고,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이제 자폐인 스스로 자폐를 축복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폐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폭력과 학대, 착취와 소외, 희생과 비극과 시행착오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그래도 인간은 어떻게든 올바른 방향, ‘인간적인’ 길을 찾아왔다. 질병이자 저주였던 어떤 상태가 축복의 대상으로 변해온 과정은 그대로 인간이 자기를 옭아맨 편견과 차별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스스로를 해방시킨 역사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역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을 기꺼이 내던져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렸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